역사상 최대 규모 경상흑자에도 환율이 상승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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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8월 국제수지 동향”자료를 보면, 1~8월 무려 536.0억 달러의 경상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은 다시 1350원 선을 넘어 연 고점을 위협하는 중입니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오늘은 이 의문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출처: 2024년 8월 국제수지(잠정) | 통계 보도자료(상세) | 보도자료 | 뉴스 및 의사록 | 뉴스/자료 | 한국은행 홈페이지

글로벌 외환시장 하루 거래 규모, 7.5조 달러!

막대한 경상흑자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외환시장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2022년 국제결제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하루 이환거래량은 7.5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참고로 세계 외환 거래량의 22.7%는 유로에 대한 달러 거래로 22.7%를 차지하고, 2위는 달러에 대한 일본 엔화 거래로 13.5%에 이릅니다.

외환시장의 규모가 이렇게 크다 보니, 연 1천 억 달러의 경상흑자 정도로는 큰 영향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뉴스가 들릴 때, 서울 외국환시장의 참가자들은 일제히 달러 사자 주문을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래 [그림]이 글로벌 외환시장의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 트라우마도 영향 미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습니다. 2024년 6월 말, 우리나라의 순대외 금융자산은 8,585억 달러에 이를 정도의 ‘자본 수출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순대외 금융자산이란, 우리 국민이 보유한 해외 금융자산에서 대외 부채를 뺀 것을 뜻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종금사들이 빌린 단기 외채의 만기 연장이 불발되면서 심각한 위기를 겪었음을 감안할 때, 격세지감을 감출 수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6월 말 기준 대외 채무는 6,583억 달러로 적지 않지만, 대외 채권이 1조 397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외환위기 걱정은 이제 덜어 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양떼 행동’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는 가운데 많은 투자자들은 한 가지 교훈을 얻었으니 “외국인 투자자에게 맞서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개에게 물렸던 사람들이 귀여운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듯, 한국 투자자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할 때마다 달러를 사기 위해 일제히 뛰어갑니다.

아래 [그림]은 2001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을 팔 때마다 환율이 급등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판 돈을 달러로 환전할 때 환율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왜 이게 문제냐 하면,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에 투자했던 돈을 국내로 가져오는 수요도 늘어나며 시장 환율이 균형을 찾는 게 정상적인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1,100원이던 2021년 초 해외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2022년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을 때, 달러 당 3백원의 차익이 발생하니 해외에 투자했던 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2022년 4분기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71.6억 달러의 순매수를 기록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율이 급등하고 코스피 지수가 2,100포인트까지 내려가는 데도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 매수를 멈추지 않았던 셈이죠.

물론 모든 투자자들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처럼 자산배분을 중시하는 장기 투자자들은 환율이 상승하며 해외 자산 평가액이 높아질 때에는 해외보다는 국내 자산에 더 많은 자금을 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리밸런싱이라고 부르는 데, 환율 및 자산가격의 급등락으로 특정 자산의 비중이 목표한 수준을 넘어설 때에는 이 자산에 대한 매수를 중지하거나 매도하는 일을 뜻합니다. 따라서 기관투자자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에 환율이 연동되는 일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도 영향 미쳐

그러나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높아지더라도,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가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기 때문이죠. 아래 [그림]은 외국인의 주식 매매와 한국 수출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수출경기가 나빠지기 전부터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가 촉발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2023년처럼, 수출 회복이 본격화되기 전에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가 출현하는 일도 잦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수출기업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수출 경기가 나빠진다 싶을 때에는 신속하게 투자 포지션을 축소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행동은 예민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며, 연쇄적인 행동을 촉발하는 것이죠.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글로벌 경기 여건의 변화를 국내 투자자들보다 빨리 파악하기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를 추종하려는 이들은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은행 등 내수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도 많지만, 한국 주식시장은 함께 움직이는 성향이 강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주식가격의 급락 그리고 외환시장의 혼란은 은행이나 보험 카드 같은 금융 기업의 미래 전망을 악화시키기 때문이죠. 특히 2002년이나 2011년 같은 금융기관 파산 사태가 모두 수출이 감소세로 접어드는 시기에 발행했던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 앞으로 해외 여건 변화에 민감한 환경이 계속될 것!

이상의 설명을 듣노라면, 한국 외환시장의 특성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봅니다. 국내 투자자들의 ‘외환위기 공포’가 현재진행형인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수출 경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항상 미국 달러가치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최근처럼, 미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가 약화되며 달러강세가 출현할 때에는 외국인 매도의 출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