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향상, 기업실적 개선으로 이어져
생산성 향상의 원인은?
지난 시간 2000년대부터 일본의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흔히 ‘잃어버린 30년’으로 일본경제를 묘사하곤 하지만, 적어도 생산성 면에서는 부활이 시작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셈이다. 물론 2017~2019년에는 다시 생산성 향상속도가 둔화되었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빚어진 ‘미·중 무역 분쟁’으로 수출이 어려움을 겪은 때문이라 보인다.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이 플러스로 돌아선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고이즈미 정부(2001년 4월 26일~2006년 9월 26일)의 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고이즈미 정부는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다”고 선언하며, 정부 조직 개편은 물론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1] 고용안정을 보호하던 전후의 이른바 ‘종신고용’ 시스템의 해체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블랙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들이 대거 출현했다. 블랙 기업이란, 고이즈미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을 활용해 인턴을 대거 채용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고하는 식으로 근로자에 대한 착취를 자행하는 기업들을 뜻한다.[2] 그러나 고이즈미 정부의 구조개혁을 ‘실패’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많은 연구자들은 고이즈미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 시행 이후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전체 고용도 늘어나는 등의 긍정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3]
더 나아가 2012년 말부터 ‘아베노믹스’로 불린 일련의 통화공급 확대정책이 시작된 것도 일본 경제의 구조를 바꾸었다. 아베노믹스 이전 일본 엔화는 지속적인 강세를 보였으며, 심지어 달러에 대해서도 엔화는 강세 기조를 보였다(<그림 1> 참조). 예를 들어 1980년대 초반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250엔 전후에서 변동했으나, 1990년대 초반에는 160엔으로 떨어지고, 2011년을 전후해서는 80엔 밑으로 내려갈 정도였다. 일본경제의 여건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엔이 강세를 보인 이유는 바로 디플레 때문이었다. 일본에 비해 미국산 제품의 가격이 계속 인상되면(=미국대비 일본의 상대물가 하락), 일본 소비자들은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벤츠의 고급 승용차처럼, 일본 기업들이 생산하지 못하거나 혹은 경쟁력을 잃은 품목을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해외 제품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이런 흐름을 바꿔 놓았다. 일본 중앙은행의 보유 자산규모(=양적완화 규모)가 2021년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의 134%에 이를 정도로 적극적인 통화공급을 펼침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들은 “어쩌면 일본에서 디플레가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갖게 된 것이다. 이 결과 2012년 이후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거의 50% 상승했으며, 2022년 접어들어서는 130엔의 벽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1> MSCI Japan지수의 주가순자산배율(PBR) 밴드 추이
일본 주가 상승의 이유는?
고이즈미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으로 근로자 임금 상승 압력이 약화된 데다, 아베노믹스로 수출 경쟁력까지 개선되자 일본 기업의 이익은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동일한 노동력을 투입해 이전보다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다면, 기업의 이익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품가격을 이전과 같이 유지하는 경우에는 마진이 늘어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제품가격을 인하하는 경우에는 경쟁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
기업의 수익성을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증권업계에서는 ROE(Return on Equity)를 중시한다. ROE란, 기업이 보유한 자산으로 얼마나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지 측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ROE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설비나 인력을 그대로 둔 채 매출을 늘리는 등의 경영혁신이 이뤄져야 하며, 이게 힘들 때에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마진을 높이며, 마지막으로는 돈을 빌려 생산설비를 확충하는 것 등이 있다. 이상의 세 가지 방법 중 마지막 방법(=레버리지)의 징후는 없으니, 최근 일본기업의 수익성 개선은 마진 개선 혹은 경영 혁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 2>는 일본 상장기업의 ROE 흐름을 보여주는데, 200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10%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주당 순자산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보여보여주는 PBR(Price to Book Value Ratio)은 여전히 역사상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 기업의 실적 개선이 지속되자 결국 주식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림 2> 1995년 이후 일본 상장기업의 ROE와 PBR 추이
외국인 지분율 상승!
일본기업의 체질 변화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였다. 1990년만 하더라도 외국인의 동경증시 지분 비중은 단 5%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20%를 돌파하고 2020년에는 30% 선에 이르렀다.[4] 물론 같은 기간 엔화 약세가 진행되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평가 손실보다 일본 주가 상승의 잠재력이 더 높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가 상승으로 외국인만 이득을 본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부터 일본경제가 망가졌던 이유가 자산가격 하락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주식가격의 상승은 일본경제에 여러 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가계와 기업이 주식을 매도할 기회가 생긴다. 주식 가격이 올라 손실을 만회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던 주식이 반등한 것은 모두 가계와 기업의 현금 흐름을 개선시킬 것이다. 특히 일본은 기업과 은행 간에 주식 ‘상호보유’ 관행이 있기에, 굳이 주식을 매도하지 않더라도 보유주식의 평가손이 축소되는 것만으로도 재무상태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이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본 주식시장은 인구감소 충격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었는지 모르지만, 부동산은 상황이 다르지 않냐고 말이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다음 시간에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 볼 것을 약속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림 3> 1970년 이후 일본 동경증시 매매주체별 지분 변화
[1] 얀베 유키오(2020), “일본경제 30년사”, 121쪽.
[2] 곤노 하루키(2013), “블랙기업”, 241~243쪽.
[3] Georg D. BLIND and Stefania LOTTANTIVON MANDACH(2015), “Decades not Lost, but Won: Increased Employment, Higher Wages, and More Equal Opportunities in the Japanese Labor Market”, Social Science Japan Journal Vol. 18, No.1, pp63-88, 2015.
[4] Tokyo Stock Exchange(2021.7), 『2020 Share Ownership 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