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한국 주식시장의 성과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수출이다.
수출이 잘되면 기업실적이 개선되며, 또 기업실적의 모멘텀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시중자금도 대거 주식시장에 유입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 최저 수준의 배당 수익률을 기록 중이고, 이 결과 주식시장에 장기투자자보다는 모멘텀. 다시 말해 시장의 변화 방향을 추종하고 또 예측하려는 투자자들로 넘쳐 흐르게 된 탓에 '수출회복'은 더욱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림 1> KOSPI vs 수출증가율
수출과 기업이익의 연관은?
물론, 투자자들의 '베팅'만 시장의 변동성을 촉발시키는 것은 아니다. 아래의 <그림>은 한국을 대표하는 200대 기업(KOSPI 200)의 영업이익과 수출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수출이 증가할 때에는 이익이 늘어나지만 수출이 조금만 위축되어도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주식시장의 흐름을 예측하고 싶다면, 아니 제대로 대응이라도 하려면 수출의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수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까?
<그림 2> KOSPI200 영업이익과 수출의 관계
수출을 예측하고 싶다면? 미국 소비를 보라!
한국 수출의 변화 방향을 예측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변수는 미국 개인소비지출이다. 아래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미국의 개인소비지출이 조금만 움직여도 한국 수출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으로, 당시 미국 개인소비지출은 단 3%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한국 수출은 4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을 경영학계에서는 ‘채찍효과’라고 부른다. 채찍효과란 채찍의 손잡이 부위를 몇 센티만 움직여도 채찍의 끝 부분이 몇 미터 이상 움직이듯, 공급사슬망(Supply Chain)의 가장 끝에 위치한 기업들이 월등히 큰 주문 변화를 겪는 현상을 지칭한다.
제일 먼저 채찍효과를 발견한 곳은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인 프록터앤갬블(이하 ‘P&G’)로, P&G의 아기 기저귀 물류 담당 임원은 수요 변동을 분석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1] 아기 기저귀라는 상품의 특성상 소비자 수요는 늘 일정한데 소매점 및 도매점 주문 수요는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문 변동의 폭은 ‘최종 소비자→소매점→도매점→제조업체→원자재 공급업체’로 이어지는 공급사슬망에서 최종 소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한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이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경제의 변화에 민감한 이유는 수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공급사슬의 끝에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3> 한국 수출 vs 미국 개인소비지출
채찍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정보 비대칭!
채찍효과가 발생하는 가장 직접적 원인은 정보비대칭에 있다. 정보비대칭이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력의 격차를 뜻한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핵심적인 정보인지를 걸러내는 능력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중고차 시장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애커로프는 1970년 발간한 논문 “레몬시장: 품질의 불확실성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처음으로 파헤쳤다.[2]
근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공급자는 자신이 공급하는 중고차의 품질을 정확하게 아는 반면, 구매자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시장에 있는 중고차 중 절반은 제대로 된 좋은 자동차(오렌지)이고 나머지 절반은 보기에만 그럴듯하지 실제로는 제시 가격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차(레몬)라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오렌지와 레몬의 비유를 하는 이유는 겉 모양은 비슷하지만, 오렌지는 달콤한 반면 레몬은 시고 떫기 때문이다.
구매자는 이런 비율을 알고 두려움에 떨면서 중고차를 사러 간다. 그들은 ‘레몬’을 잡을까 두려워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구매한다. 하지만 어쩌다 레몬을 선택하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은 일단 가격을 깎고 본다. 왜냐하면 좋은 자동차를 평균적인 시세보다 싸게 산다면 이전의 거래로 입은 손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찍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정보 비대칭!
중고차 시장과 달리, 현실에서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속내를 알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다. 2008년 여름, 갑자기 고객이 줄어든 소매점포를 생각해보자. 이 점포의 매니저 입장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자기 점포의 진열이 별로인지, 아니면 주변에 경쟁 점포가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하는지, 그리고 불황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 등에 대해 고민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으니, 판촉 활동을 강화하려 들 것이다. ‘2+1’ 혹은 ‘1+1’ 상품들이 진열대에 즐비하게 깔릴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매출은 더욱 줄어든다. 가격 할인한 만큼 물량이 더 팔려야 하는데, 물량의 증가가 미미하니 매출이 늘어날 수 없다.
결국, 가을이 다가와서야 진실을 알게 된다. 전국적인, 아니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을 포함한 인접지역 모든 점포의 매출이 감소했음을 알게 된 후, 제일 먼저 할 일은 제조업체에 전화를 거는 것이다. 부동산가격의 폭락과 은행의 연쇄적 파산 영향으로 매출이 앞으로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으니, “주문을 줄이겠다”고 통보해야 한다.
유통업체로부터 ‘주문 삭감’ 전화를 받은 제조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유통업체와 달리 제조업체는 신속하게 생산량을 조절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부품업체들에게 다음 달 생산 분량을 모두 주문해 놓은 데다, 근로자들과 1년 혹은 그 이상 기간으로 고용계약을 맺어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인력을 해고했다 경기가 신속하게 회복되면 이 회사는 경쟁사들에게 밀려나 자칫하면 파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제조업체들은 일단 근로자들을 교대로 무급휴가를 보내는 식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한편, 부품업체에 “당분간 신규주문은 없을 것”이라고 연락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나 액정 디스플레이 등 핵심적인 정보통신 부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 수출기업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소비자시장으로 물건을 수출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공장을 돌렸고, 장거리 운송으로 운임이 비싸기에 한 번에 대량 수송할 목적으로 컨테이너 선도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한국 등 동아시아의 수출 국가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면을 감안해 보면, 최근 발표된 미국의 8월 개인소비지출 통계는 한 줄기 복음 같은 뉴스라 할 수 있다. 미국 소비지출의 '수출 선행성'을 감안할 때, 한국 수출은 적어도 2021년 중에는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