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성과 부진, 짠물 배당 때문!

2024년도 1/6 밖에 남지 않은 지금, 한국 증시의 부진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해 연말에 비해 10월까지 각국의 주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미국이 19.62% 일본이 14.6% 그리고 신흥시장이 12.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한국 KOSPI는 -3.7% 그리고 MSCI Korea 지수는 -7.2%를 기록해 국장에 투자한 분들의 시름이 컸습니다.

한국증시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요인과 순환적인 요인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증시 부진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반도체 기업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즉 순환적 요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이 1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의 미래가 어둡다”는 경고가 도처에서 쏟아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순환적 요인은 세월이 지나면 해소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구조적 요인은 개선의 징후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구조적인 원인, 특히 배당에 이야기를 집중하겠습니다.


짠물 배당, 오랜 전통에 기반한 것?

아래 <그림>은 2000년 이후 회사채 수익률과 배당수익률의 추세를 보여주는데, 금리의 변화에 상관없이 배당수익률이 1%대를 유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2008년인데, 이때는 배당수익률의 분모에 해당되는 주가가 급락한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1996년 기사를 보면, 세계의 주요 주식시장 36군데 중에서 배당수익률 기준으로 한국이 33위에 그쳤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이니 한국 기업들의 짠물 배당은 아주 오래 전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왜 배당에 인색할까요?

이 대목에서 한국기업이 배당에 인색한 이유가 궁금한 고객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투자의 성과는 2~3년 뒤에나 드러날 뿐만 아니라 한번 투자된 자본재의 대부분은 10년 이상의 기대 수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한번 투자에 실패하면 파산의 위험에 노출되고, 이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바로 1997~1999년의 연쇄적인 대기업 집단 파산 사태입니다.

끝없는 투자 경쟁, 그리고 파산의 위험 앞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예상한 바와 같이, 배당을 통해 외부에 자금을 유출하기보다 기업 내부에 자금을 최대한 유보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1997년 한국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396.3%에 이르렀지만, 2023년에는 75.87%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재무여건이 개선되었음에도 기업의 성과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의 비율을 보면, 2017년 7.6%에서 2023년 3.3%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결국 기업들이 기업 내에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려 노력한 게, 꼭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짠물 배당의 부작용은 없을까?

만성적인 저배당 흐름이 이어질 때, 투자자들의 태도도 바뀝니다. 즉 “기업 이익이 늘어나고 성장하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또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결국 ‘기업의 성장이 주가의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익이 늘어나더라도 배당에 인색하다면?

이 회사에 투자하는 이들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대한 관심을 접는 대신, 시장에서 부각되는 테마와 이 회사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지 등에 대해 더 관심이 늘어날 것입니다. 지난 2022년 제16호 태풍 ‘노루’가 한반도에 접근할 때, 이름이 비슷한 페인트 회사의 주가가 급등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당은 주식시장이 붕괴될 때 ‘저가매수’의 기반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A기업의 주가가 1만원이고 연간 200원의 배당을 지급한다고 가정해보자. A기업 주식의 배당수익률은 2%가 됩니다. 그런데, 만일 투자자들이 A기업이 불황이 오더라도 200원의 배당을 유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주가 폭락은 저가매수의 기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A기업 주가가 5천원으로 떨어질 때, 배당수익률은 무려 4%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죠. 이 정도 배당수익률이면 웬만한 회사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며, 만일 여기서 주가가 더 빠지면 배당 투자의 매력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업이 배당을 전혀 지급하지 않거나 혹은 배당을 자주 중단한 기업이라면?

아마 특정 주가 레벨 밑으로 내려가자 마자 ‘손절매(loss-cut)’ 주문이 쏟아졌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기관투자자의 손절매 주문까지 나오면, 연쇄적인 폭락 사태가 출현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한국 기업의 인색한 배당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가장 결정적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장기적 성과’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드는 데다,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의 저가매수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와 같은 구조적 요인에 변화가 없는 한, 한국증시가 만년 저평가 신세를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