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따라잡기 전략'을 통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이탈리아는,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근로자의 생산성 대비 임금 수준을 뜻하는 단위노동비용이 EU 평균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씁니다. 특히 이탈리아 특유의 활기찬 작은 가족 소유 회사의 단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죠.
이 가운데 첫 번째 외부 충격이 발생했으니, 바로 1999년 유로에 가입한 것입니다. 유럽의 단일 통화인 유로를 사용하기 위해서 각국은 GDP의 3% 이하로 매년 재정 적자를 통제하는 한편, 전체 국가부채를 GDP의 60% 아래로 통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100%를 넘어서는 수준이었죠. 따라서 많은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프로디 총리는 유로존(유로화를 자국 화폐로 사용하는 12개 유럽 국가를 지칭)에 이탈리아가 가입함으로써, 높은 임금인상율을 억제하고 통화가치를 안정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2001~2006년 정권을 잡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노동시장 개혁은 커녕 가파른 임금 상승을 허용했고, 유로존 가입으로 인해 출현한 저금리 환경을 즐기기만 했죠. 결국 이탈리아의 단위노동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습니다.
이때 새로운 외부 충격이 발생했으니, 바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이었습니다. 높은 인건비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하던 중,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함에 따라 이탈리아 제조업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2012년의 유럽 재정 위기, 그리고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과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탈리아는 침몰했습니다.
(재정위기의 대가로) 강력한 재정 긴축을 시행함에 따라, 소득 수준이 낮은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어려움이 커졌고 공공서비스는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이 결과 (극우파) 멜로니 총리가 선거에 승리하게 되었죠.
물론 2010~2012년처럼 이탈리아가 다시 재정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유럽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강화한 데다, 이탈리아는 실패하기에 '너무 큰'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전망의 악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멜로니 정부는 고금리와 강력한 인플레 환경에서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 내 (단위노동비용의 상승이라는) 구조적인 장애물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에서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2000~2021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을 보여줍니다. 붉은 선은 이탈리아, 검정색 선은 OECD 평균을 나타냅니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탈리아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이 OECD 평균을 지속적으로 상회했음을 발견할 수 있죠.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독일 수준까지 내려가면서, 거의 제로에 가까운 차입 비용을 활용할 수 있었던.. 버블의 시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2010년 이후 이탈리아 단위노동비용이 OECD 평균을 밑돌고 있습니다만, 과거에 잃어버린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 2000~2021년 OECD 가입국 단위노동비용 상승률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