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외국인투자자들이 대거 순매도한 영향으로 종합주가지수 3,200포인트를 하회하자 인터넷 여론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주식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이제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혹은 “이제 주가는 빠질 일 밖에 없다” 같은 비관적인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연내 4,000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던 것과 전혀 딴판이다.
한국의 투자자들은 왜 이렇게 변심이 잦을까?
필자가 보기에 한국 주식시장이 투자자들이게 ‘안정적인 성과’를 준 적이 거의 없었던 탓이 가장 크다. 아래 첫 번째 <그림 1>은 1981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 종합주가지수(KOSPI)의 연 수익률 분포인데, ‘종(鍾)’ 모양의 정규분포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반면 두 번째 <그림 2>에 표시된 미국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 500지수(이하 ‘S&P500’) 지수의 수익률 분포는 평균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연평균 주가 기준이니, 주식시장의 급등락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평탄한 분포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분포를 보면 최빈값(Mode), 다시 말해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값이 평균과 크게 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1년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수익률은 -10~0%인데, 역사적인 평균 수익률은 11.0%이니 그 괴리가 굉장히 크다. 더 나아가 연 평균 주가가 전년에 비해 낮은 수준에 도달하는 ‘손실’ 확률은 42.5%에 이른다. 반면 S&P500 지수 수익률 분포를 살펴보면, 연 평균 수익률(9.43%)과 최빈값(10~20%)가 대체로 비슷하며 손실위험도 단 20%에 불과하다.
<그림 1> KOSPI (1981년 이후 연간 수익률 분포, CAGR 7.5%, 원화 기준)
<그림 2> S&P500 (1981년 이후 연간 수익률 분포, CAGR 8.6%, 원화 기준)
이상의 설명을 들은 독자들 중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연 환산 복리 수익률은 7.5%에 불과한데, 한국 주식투자의 연 수익률 평균이 11.0%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 이유는 한국 주식시장이 종종 큰 폭 하락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해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였는데, 1년뒤 500포인트로 떨어졌다 2년차에는 다시 1000포인트를 회복했다고 가정해보자. 연 환산 복리 수익률은 0%이지만, 연 평균 수익률은 25%다. 왜냐하면 1년차에는 -50%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2년차에는 100% 성과를 기록해 평균은 25%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환산복리 수익률과 연평균 수익률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투자의 난이도가 높다는 뜻이 된다.
참고로 연환산복리수익률이란, 1981년에 투자된 100만원이 2020년 말 3천만원이 되려면 연 몇 퍼센트의 성과를 기록해야 하는지 역으로 추산한 값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연 평균 수익률보다 복리수익률이 훨씬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연환산복리수익률과 연평균 수익률이 비슷한 미국 주식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국 주식투자가 대세?
이 대목에서 “미국 주식이 더 유망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 주식 ‘올-인’투자가 몇 가지 위험을 지니고 있는데,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환율 변동의 위험이다. 만일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환헤지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 <그림 3>과 같은 성과를 기록한다.
일단 수익률은 달러로 계산했을 때보다 높다. 연 평균 수익률이 무려 11.7%에 달하니까. 그러나 연환산 복리수익률은 9.8%로 거의 2% 포인트나 낮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의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1997년이나 2008년 그리고 2020년 같은 경우에는 한 해에만 환율이 수 십 퍼센트 이상 급등한 바 있다.
물론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오르는 것은 미국 주식에 투자한 사람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그러나 환율이 급격히 떨어진 해도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1999년에는 환율이 지난 해에 비해 14.9%나 떨어졌고, 2000년에도 4.8% 낮아진 바 있다. 특히 2000년에는 정보통신 거품이 붕괴되며 미국 주식시장이 대단히 어려웠음을 감안하면, 미국 주식 투자는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높다. 뿐만 아니라, 2000년 정보통신 거품 붕괴 이후 미국 주식시장이 10년 넘게 부진했던 것도 잊지 말자.
<그림 3> S&P500 (1981년 이후 연간 수익률 분포, CAGR 9.8%, 원화 기준)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이상의 분석에서 보듯, ‘무조건 투자해야하는’ 시장 따위는 없다. 한국과 미국 등 대부분의 주식시장은 나름의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달러 자산에 일부 자금을 분산하는 것이 가장 낫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주식시장이 가장 좋은 성과를 기록했던 해는 1999년(+98.7%), 2002년(32.2%) 그리고 2010년(23.4%)를 들 수 있는데 이 시기 모두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은 직후였다. 1999년은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로부터 회복되는 시기였고, 2002년은 동시다발 테러 공격 직후였으며, 2010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경제가 살아나는 때였다. 그리고 현재 주가 수준에서 마감할 경우, 2021년도 역사적인 상승률 최상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것 같다.
즉, 한국 주식시장은 10년에 4~5년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위험한 시장이지만 증시 폭락 이후에는 강력한 주가 상승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이나 테러, 그리고 전염병 등으로 주식시장이 붕괴했을 때가 가장 좋은 투자의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시기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대부분 여유 현금이 없다는 데 있다. 주식에 투자한 돈은 큰 손실을 기록하는 중이었을 수 있고, 또 부동산에 투자된 돈은 신속하게 현금화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달러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마다 환율이 상승하며 달러자산의 평가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의 자금이라도 미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다면,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시기에 ‘저가매수’의 여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주식시장은 대단히 변동성이 큰 시장이며, 특히 10년 중에 4~5년 동안 마이너스 성과를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의 연환산복리수익률이 7.5%에 이르는 이유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에 강력한 주가 상승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주식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는 방법은 금융위기 국면에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을 보유했다, 저평가된 우량주를 매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달러는 금융위기 국면에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으니, 한국 주식시장의 참가자들은 일부라도 달러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였으면 한다.